제주 비자림 산책, 구좌에서 초가을을 가장 먼저 만나는 숲길
9월이 끝날 무렵, 제주에서 가을이 왔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는 망설임 없이 비자림을 말합니다. 한라산도 아니고, 억새밭도 아닙니다. 구좌읍 깊숙이 들어앉은 이 숲에서는 공기가 먼저 달라집니다. 습하지 않고, 그렇다고 건조하지도 않은. 딱 그 사이 어딘가의 온도와 냄새가 9월 말의 비자림에는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제주를 안내하면서 비자림을 빠뜨린 적이 손에 꼽힐 만큼, 이 숲은 어떤 계절에 와도 나름의 표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초가을, 여름의 짙은 초록이 막 가라앉기 시작하는 시기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습니다.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곳입니다. 비자림 입구에서 안쪽 숲길 방향을 바라본 모습. 양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비자나무와 좁은 탐방로가 인상적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달라지는 숲의 공기 비자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가면,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온도가 체감상 2~3도 정도 내려갑니다. 이건 과장이 아닙니다. 빽빽하게 자란 비자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기 때문에 직사광선이 거의 들지 않고, 그 안은 바람도 다르게 움직입니다. 여름에 오면 이 체감 온도 차이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데, 가을 초입에 오면 바깥과 숲 안의 온도 차이보다 냄새 차이가 더 인상적입니다. 9월 말에서 10월 초의 비자림은 여름의 습기를 조금 덜어내고, 숲 바닥과 나무 수피에서 올라오는 향이 또렷해지는 시기입니다. 비 온 다음 날 아침에 더 좋은 이유 비 오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이 숲에 들어가본 분은 아실 겁니다. 비자나무 특유의 수지 향기가 습기를 타고 퍼지는데, 코끝이 아니라 폐 깊이 들어오는 느낌이 납니다. 일부러 비 온 이튿날을 노려서 방문하는 여행객도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탐방로가 흙길 위주라 비 직후에는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신발은 고민 없이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멈춰 서는 시간이 많다면, 밑창이 얇은 신발보다는 접지력이 있는 신발이 훨씬 ...